1% 성장 더하기 (1% growth more)

흔들려 봐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본문

책 속으로

흔들려 봐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성장 더하기 + 2024. 7. 30. 10:54
728x90
반응형

흔들려 봐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나무 목木 자는 나무 한 그루가 땅에 우뚝 선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다. 

여기에 사람 인人 자를 더한 것이 휴식할 휴休 자인데, 

모양만 봐도 알 수 있듯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편히 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듯 나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위로해 주는 안식처로 우리 곁에 머물렀다. 

농부들은 뙤약볕 아래서 농사일을 하다가 힘들면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서 땀을 식혔고, 

집안의 크고 작은 우환이 있을 때면 마을 어귀의 당산목을 찾아 

지치고 아픈 마음을 내려놓곤 했다. 

지금도 농사를 짓는 시골 마을에 가 보면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아온 노거수를 흔히 볼 수 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팽나무는 예로부터 느티나무와 함께 마을을 지키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나무 중 하나다. 

마을 어귀 팽나무 밑에서 하얀 모시옷을 단정히 차려입은 할아버지들이 

한 손에 부채를 들고 한가롭게 장기를 두는 풍경은 

여름 농촌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더욱이 바람이 많이 부는 바닷가 마을의 당산목은 대부분 팽나무였다. 

느티나무, 은행나무만큼이나 오래 살기도 하거니와

짠물과 갯바람을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특히 어선이 드나들던 작은 포구에는

팽나무가 꼭 한 그루씩 있었다.

그래서 남해 바닷가 마을에서는

팽나무를 포구나무라고 부르고,

제주에서는 폭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북 고창의 팽나무는

현존하는 팽나무 중 가장 굵은데

마을 앞 간척지를 매립하기 전에는 나무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나무줄기에 배를 묶어 두기도 했단다.    

가난한 어부들은 작은 나룻배 한 척에 몸을 싣고 거친 바다로 나설 때면

팽나무 아래에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원했다.

기댈 곳 하나 없는 힘든 삶이지만

팽나무를 기도처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며 만선을 꿈꾸기도 했다.

길게는 천 년을 넘긴 팽나무도 있으니

나무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사연을 품고 있을까.

가끔 남해 바닷가에서 자라는 팽나무를 보고 있으면

거친 바닷바람을 이겨 낸 인고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가난한 어부들이 거친 풍랑을 맞으며 고기잡이를 하는 동안

팽나무 역시 해안가의 거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버텨 낸 것이다.

 

나무는 빛이 디자인하고 바람이 다듬는다고 했던가. 

잎을 모두 떨군 겨울 팽나무를 보면 

거친 바람이 만들어 낸 기하학적인 모양새에 할 말을 잃는다. 

흔들림의 미학이라고 할까. 

자연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절묘한 수형 앞에

인간이 만든 예술 작품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나무가 하늘을 향해 크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바람에 수없이 흔들리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냉혹한 바람에 꽃과 열매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뿌리의 힘은 강해지고 시련에 대한 내성도 커진다.

바닷가에 자리한 팽나무가 거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꼿꼿했더라면

그렇게 아름다운 가지들을 지닌 거목으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팽나무에게 있어 흔들림은 스스로를 더 강하고 크게 만드는 기반이었다.

 

인간사라고 다를까. 

지난한 현실 앞에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린다. 

공자는 마흔이 되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과연 마흔이 됐다고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간은 작은 유혹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시련 앞에 맥없이 무너지는 약한 존재다.

그러니 흔들리지 않으려 너무 애쓰기보다는

오히려 흔들리며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힘을 빼고 세월의 흐름에 온몸을 맡겨 보는 것.

바닷가 포구에서 거친 바람을 맞으며 살아가는 팽나무처럼 말이다.    

도종환 시인이 말했듯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고,

흔들리지 않고 곧게 서는 줄기도 없다.

나무가 하늘을 향해 높이 자랄 수 있는 것도

바람 앞에 무수히 흔들리며 살기 때문이다.

때론 가지가 꺾이기도 하고 꽃과 열매를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결국 중심을 다잡고 더 센 바람에 맞설 힘을 키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흔들리지 않으려 너무 애쓰면 오히려 쓰러지게 된다.

그러니 흔들린다고 자책하지 말자.

흔들리되 다시 중심을 잡고 가면 될 일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

걷다가 시련 앞에서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 걸어가고.

 

 

* 출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