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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탐하라

가난한 사랑 노래

성장 더하기 + 2024. 5. 2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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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랑 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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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신경림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 산동네에 살 때였다고 합니다.

집 근처에 자주 들르던 술집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그 집 딸과 연인 사이인 한 청년을 만났다는군요.

그는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는 열정을 지녔지만,

한편으론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처지를 못내 부끄러워하는 순박한 젊은이였죠.

청년이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그 집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너무 가난해서 결혼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딸 가진 부모로서는 그런 사위를 맞아들이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청년은 그 집 딸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를 여러 번이나 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시인은 청년에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둘이 결혼하면

주례도 해 주고 결혼 축시도 써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말에 힘을 얻어서 둘은 머잖아 결혼식을 올리게 됐지요.

결혼식은 어느 건물의 비좁고 허름한 지하실을 빌려서 했습니다.

청년이 노동운동으로 지명수배를 받아 쫓기는 신세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요.
숨어서 치른 결혼식은 자못 감동스러웠습니다.

축하객은 다 합쳐봐야 열 명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얼마나 가슴 저린 사랑의 결실인지 알고 있었기에

저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축하를 보냈습니다.
그날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돌아온 시인은

두 사람이 겪은 마음고생과 인생의 쓰라림을 달래는 마음으로 시 한 편을 썼습니다.

그때 탄생한 시가 바로 「가난한 사랑 노래」입니다.

 

- 고두현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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