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장 더하기 (1% growth more)
언제나 나아가라 ! - 랄프 왈도 에머슨 - 본문
언제나 나아가라 !
언제나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라.
목표를 가지고 비상하는 순간,
인생은 충만해지며 살아 숨 쉰다.
인간은 소심하고 비겁하며 심지어 올바르지도 않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거나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성인이자 현자의 말을 인용할 뿐이다.
그리고 풀잎을 보고, 혹은 피어나는 장미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 창문 아래 피어난 장미들은
어제의 장미나 더 예쁜 장미를 말하지 않는다.
장미는 있는 그대로 피어 있으며 오늘의 신과 함께 피어 있다.
그들은 시간을 말하지 않는다.
그냥 장미가 있고, 존재하는 모든 순간이 완벽하다.
장미는 잎눈을 피우기 전에 온 생애를 피워 올린다.
활짝 핀 꽃에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고,
잎 없는 뿌리에도 더 이상 부족한 것은 없다.
자족하는 장미의 본성은 모든 순간 자연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인간은 일을 연기하고 과거를 기억한다.
현재를 살지 않고 과거로 눈을 돌려 지난 일을 한탄한다.
가진 재산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탐하며 까치발로 서 있다.
인간은 시간을 뛰어넘어 자연과 함께 현재를 살기 전까지
행복할 수 없고, 강건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다.
아무리 명석한 지식인들도 감히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려 하지 않는다.
다윗이나 예레미야, 바울 같은 선지자들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우리는 몇몇 책이나 특정 인물의 삶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때때로 할머니와 가정교사의 말을 마음에 새기는 어린아이와 같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만나는 능력과 성품이 훌륭한 사람들을 따르게 된다.
훗날 어른이 되어 희미한 옛 기억을 더듬어보면
과거 어른들이 했던 말이 비로소 이해되고,
그 말의 무게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제 필요할 때면 언제든 스스로에게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다.
진실한 삶을 살면 진실한 것을 보게 된다.
강한 사람이 강해지는 것은 약한 사람이 약해지는 것만큼 쉽다.
새로운 지각을 받아들일 때는 오래된 쓰레기를 버리듯
아껴둔 보물의 기억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과 함께할 때 우리의 목소리는 시냇물이 속삭이고
보리 이삭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처럼 달콤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진실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의 최대치는 직관의 아득한 기억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최선의 근사치는 이것이다.
선善이 손에 잡힐 듯하고 생명이 당신 안에 약동한다고 해도,
그 둘은 정해진 수순이나 익숙한 방식으로 만나지 않는다.
그 길에는 선현의 발자국도 없고 타인의 표정도 살필 수 없으며,
누구의 이름도 듣지 못할 것이다.
그 방법과 생각과 지향점은 완전히 낯설고 새로울 것이다.
그 길은 경험과 전례가 무의미한 곳이다.
설사 선현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운다고 해도
그것을 타인에게 물려줄 수 없다.
앞서 존재했던 모든 이는 소임을 다한 사역자들일 뿐이고,
이제 마주해야 하는 것은 두려움과 희망이다.
희망이란 온전히 좋은 것만 내포한 말이 아니다.
사람이 꿈을 꾸는 시간에는 감사할 일이 많지 않으며,
충만한 기쁨을 만끽할 일도 없다.
하지만 당신의 영혼이 더욱 열정을 불태운다면
자아를 느끼고, 영원한 인과의 법칙을 알게 되고,
진리와 정의를 체득한 자아를 확신할 것이며,
모든 것이 선을 이루는 모습에 평안을 얻을 것이다.
대서양이나 태평양 같은 자연의 위대한 공간도,
몇 년이나 몇 세기의 아득한 세월의 마디도
인간에게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지금 이곳은
내 삶과 죽음의 토대이면서 동시에
이전 사람들이 이룩한 삶과 환경의 소산이다.
인생이 의미가 있을 뿐, 살아 있는 자체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힘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하지만 과거를 일신하고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
간극을 넘어서 비상하는 순간,
목표를 향해 진력하는 순간, 인생은 충만해진다.
세상이 부정하고자 하는 한가지 사실은 이것이다.
영혼이 변질되면 사람들은 과거를 망각하고,
부로 빈곤을 생성하고, 명성으로 수치를 양산하고,
성인과 악당을 혼동하고, 예수와 유다를 동류로 배척한다.
우리는 왜 스스로 우뚝 서는 일을 칭송하는 것일까?
현재를 사는 사람은 생각만이 아닌 실행하는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신뢰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해도,
이미 그 사람은 신뢰를 실행하고 그의 행위가 신뢰이기 때문이다.
만약 나보다 나를 더 신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나를 지배할 수 있다.
우리는 영혼의 중력이 작동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의 주위를 맴돌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어떤 미덕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과대포장하곤 한다.
그 미덕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나 그 사람이 구성한 집단이
수많은 덕성의 원리를 겸허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한 도시와 국가는 물론 어떤 왕과 부자와 시인들도 지배하고 움직일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들의 핵심을 관통하는 사실이며,
모든 것을 궁극의 하나로 수렴하는 해결책이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궁극의 원인이 가진 속성이다.
이 궁극의 원인은 선이 구현된 척도에 따라
다양한 하위 형태들을 휘하에 거느린다.
실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이 담고 있는 미덕만큼 실재한다.
상업이든, 목축이든, 동물을 사냥하든, 고래를 포획하든,
전쟁을 하든, 그것이 웅변이든, 개인의 가치든,
모든 것은 각자의 존재와 행위를 통해 존중받을 가치를 지닌다.
나는 자연에서도 스스로를 보존하고 갱신하기 위해
이와 동일한 법칙이 작동하는 것을 본다.
자연에서 권력은 본질적으로 옮음의 척도이다.
자연은 스스로를 돕지 않는 이가 자신의 품에 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행성의 생성과 성숙과 균형과 궤도는 물론
강한 바람으로부터 자기를 건사하는 구부러진 나무와
모든 동식물의 생생한 생명력은 자족하고 자립하는 영혼의 자기 증명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자아로 응축된다.
배회하지 말고 자아의 원인을 품고 자아의 집에 머물라.
신성한 사실들의 소박함을 널리 선포하여
그대에게 간섭하는 사람과 책과 단체들을 놀라게 하고 깨닫게 하라.
그대 안에도 신이 있으니 침입자들에게 신발을 벗고 들어오도록 명하라.
우리의 소박함으로 그들을 심판하자.
우리의 타고난 풍요로움을 드러내며 자연과 물질세계의 빈곤함을 증명하자.
* 출처: 랄프 왈도 에머슨 성공의 법칙 (랄프 왈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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