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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중립적이다 - 법상 본문
돈은 중립적이다
출처; 부자수업 (법상)
만약 돈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돈으로 인해서 타락할까?
훌륭한 사람도 돈을 많이 벌게 되고,
그러다가 과도하게 축적하게 되면 집착하고 휘둘리게 된다.
결국, 돈으로 인해서 타락하게 된다.
로또에 당첨되고 나면 잘 지내던 부부가
갑자기 돈을 가운데 놔두고 서로가 헐뜯고 이혼을 하고,
투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650억 원이라는 큰 금액의 로또에 당첨된 부부가
얼마 지나지않아 이혼하고, 대저택에서 호화롭게 몇 개월 살다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이런 복권과 대박에 얽힌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가 넘쳐난다.
돈이라고 하면 심지어 가족도 죽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돈은 좋은 게 아니다.
많은 성인이, 현자들이, 무소유와 청빈 정신을 찬탄하며 설했다.
오히려 가난한 나라들, 부탄, 방글라데시, 티베트, 미얀마 사람들이
오히려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행복지수가 더 높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돈이 별로 필요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돈은 나쁜 게 분명해 보인다.
반대로 과연 돈을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돈을 나쁘다고 한다면 ‘왜 많은 사람이 돈으로 인해서 행복해할까?’하는
반론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 돈 있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 많은 사람이 돈을 벌려고 하고, 돈으로 인해서 행복을 느끼고 누린다.
돈은 ‘나쁜 것이다’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잘 쓰면 큰 행복과 평화로움, 풍요로움을 이 세상에 가져다준다.
바로 그 돈을 가지고 수많은 결핍된 이웃을 도울 수 있고,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도 있다.
세계 제일의 부자 빌 게이츠는
“내 전 재산의 99%를 사회에 기부하겠다.
그리고 자녀에게는 1,000만 달러씩만을 상속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발표가 있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세계 두 번째 부자 워런 버핏은 빌 게이츠가 만든 기부재단에
‘빌 게이츠가 믿음이 가고 잘할 것 같다’는 단순한 이유로
전 재산의 80%인 370억 달러를 기부했다고 한다.
그렇게 기부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아직도 어마어마한 부자다.
이렇게 돈으로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을 도울 수 있다면 돈이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이처럼 돈이라는 것 자체는 사실 중립이다.
돈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한 부자가 있다.
그 사람은 훌륭한가? 훌륭하지 않은가?
행복할까? 행복하지 않을까? 지혜로울까? 어리석을까?
‘부자’라는 것만으로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부(富)를 기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돈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특별한 결정적인 요건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돈은 이처럼 하나의 작은 요인일 뿐이지,
그것 자체에 어떤 고정된 성품이 있거나
실체적인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돈 그 자체로써는 좋거나 나쁘지도 않고,
행복하거나 불행하지도 않으며, 능력이 있거나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돈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해석, 판단이
그것을 좋거나 나쁘게 만들 뿐이다.
돈에 대한 집착이 많고, 돈에 대한 선입견이 많으며,
돈을 가치판단의 최우선에 두는 사람이라면
부자를 보면서 훌륭하다거나 능력 있다거나 행복하겠다거나
그 사람이 심지어 위대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에게 돈은 그다지 큰 관심 사항이 못 될 수도 있다.
돈은 이처럼 가치 중립적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 할까?
아니면 청빈의 가치를 위해 돈을 포기해야 할까?
가난하지만 만족하면서 사는 게 나을까?
부유하고 풍요로우면서도 나누며 사는 것이 좋을까?
어느 쪽은 좋고 어떤 쪽은 나쁘다고 결정지을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부를 선택해도 좋고, 가난과 청빈의 정신을 선택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을 통해 얼마나 지혜롭고도 자비롭게
삶을 살아나갈 것인가에 있다.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지혜와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가에 있다.
표면적인 선택 그 자체는 중립일 뿐,
그 이면의 깊은 삶이 우리에게는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무조건 가난과 청빈,
무소유와 무욕만을 주장하는 종교는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너무 부자와 욕심 쪽으로 치우쳐 있으므로
균형을 위해 가난하게 사는 것, 청빈하게 사는 방편을 강조한 것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분들은 “지혜롭게 부자 되는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라고 묻곤 한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면서도 치우침 없이 행복할 방법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돈을 많이 버는 쪽을 선택하더라도 좋은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자신을 돕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돈은 나쁠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돈을 나쁘다고 하는 이유는 우리가 돈에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돈을 나 자신만을 위해서 쓸 때, 즉 아상(我相)을 강화하고
이기심과 아집(我執)을 키우기 위한 용도로 사용할 때 나빠진다.
반대로 아상을 타파하는 방향으로 사용된다면 돈은 좋은 것이 된다.
이타적으로 베풀고, 나누고, 타인을 돕는 용도로 사용되어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쓰인다면 돈은 많이 벌어도 좋다.
또한, 지혜와 배움, 명상과 영성, 베풂 등의
종교적 실천 등을 위해 돈이 쓰일 때도 그 돈은 아름다운 것이 된다.
따라서 돈을 벌어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 개인만을 위해 쓸 것이 아니라
이타적으로 남을 위해 쓰겠다’라는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 정신이 토대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행복하고,
벌어도 행복하고, 번 이후에 다시 베풀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아상과 아집, 이기심에 싸인 사람은 돈을 번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없다.
오히려 자신에게 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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